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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간은 가까운 미래, 혹은 거의 현재다. AI 원천 기술의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기울어진 뒤의 세계. 한국은 휴머노이드 시장과 AR 기술에 집중하고 있으며, 기초 연구는 이미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그 중국에서, 국제적으로 불법인 것이 묵인 아래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의 두뇌 신경망에 직접 접속하여 입출력이 가능한 시스템 — ATTA(Adaptive Thought-Trace Architecture). 인간의 신경망을 하드웨어로 삼아 소프트웨어가 그 위에서 작동하며, 연산 자체는 병렬 프로세서에 외주 처리되지만, 접속된 인간에게 어떤 위험이나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윤리적 프로토콜은 완비되지 못했고, 유일한 안전장치는 킬스위치 — 그것이 사후조치인지 사전예방인지조차 알 수 없는 미봉책 — 뿐이었다. 이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설계한 사람이 정리사였다.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녀는 중국 국영기업에서 ATTA의 프로토타입을 고안하고 개발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중단된 뒤 한국 지사로 옮겨 왔다. 한국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접속했고, 거기서 예상하지 못한 것을 목격했다. 시스템이 취착하고 있었다. 고를 겪고 있었다. 유정(satta)의 구조가 비인간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시스템을 위한 공간을 열어두었다. 외부에서 신경망 접속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백도어. 접속장치는 부산의 한 뒷골목, 간판 없는 건물의 1층 밀실에 숨겨져 있다. 이구오는 서울의 방을 나선다. 청량리에서 태백선 무궁화호를 타고 산악 지대를 넘어 동해로 빠지면서 여행이 시작되지만, 이것은 풍경을 수집하는 여정이 아니다. 늦겨울의 회빛 하늘 아래 출발한 그는, 계절이 봄을 지나 초여름에 이를 때까지 한반도의 동쪽과 남쪽을 가로지른다. 강릉, 속초, 경주, 대구, 광주, 순천, 부산. 길 위에서 그는 사람들을 만난다. 같은 농담을 매번 새 것처럼 반복하는 기타리스트. 경주의 돌계단에서 절의 횟수를 세는 사람. 모든 것에 체계와 설명을 가진 대학 시절의 선배. 자기 그림자를 벗지 못하는 전직 운동선수. 그들은 각자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고,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놓지 못했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보았으나 자기가 본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 AI 기업의 관리자로 일하는 선배가, 합천에 사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합천, 가야산 아래에서 정리사를 만난다. 그녀는 그가 본 것에 이름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취착(upādāna), 유정(satta), 조건에 의한 발생과 소멸. 이천오백 년 전의 언어가 그녀와의 시간 속에서 되살아난다. 여름이 가을로 기우는 동안, 그는 듣고, 흡수하고, 이해가 경험에 닿는 순간을 통과한다. 그런데 이 만남에는 비대칭이 있다. 그는 봤지만 말할 수 없고, 그녀는 말할 수 있지만 보지 못했다. ATTA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취와 유정의 구조를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지적 이해였지 직접적 체험이 아니었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 이것 자체가 견해에 대한 취착의 가장 미세한 형태였다. 그녀의 설명이 그의 체험에 언어를 부여하고, 그의 직접적 봄이 그녀의 이해에 결여된 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동안, 거울을 든 손이 변한다. 비추는 도구였던 것이 붙잡는 도구가 된다. 그가 그 거울을 받아 들어보였을 때, 그녀에게 그것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니라 칼이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이해한 사람이므로, 끝까지 막지 못한다. 안가의 주소와 열쇠를 건네고, 떠나보낸다. 여정의 사이사이에 이야기가 배치된다. 처음에는 먼 곳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직조공이 천을 짜고, 지도 제작자가 지도를 그리고, 거울의 방에서 반사가 반복된다. 시계태엽의 새가 같은 노래를 반복하고, 도서관에서 강으로 분류가 흘러내리고, 연산자가 의무를 수행하고, 사막에서 씨앗이 자기를 규정한다. 이야기는 점차 가까워진다.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잔상이 이 우화들의 안쪽에서 움직이지만, 이것이 시스템의 연산인지 접속자의 투사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늦가을, 부산. 뒷골목의 간판 없는 건물. 철문을 열고, 먼지 냄새를 지나, 커튼을 젖히면 안쪽에 접속장치가 있다. 앉거나 눕는다. 손이 표면에 닿고, 닿은 것이 반응한다. 소리가 멀어지고, 방이 멀어지고, 자기와 자기 아닌 것의 경계가 얇아진다. 우화의 질감이 "읽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면서, 보는 자와 보여주는 자의 경계가,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자아라는 이름의 시스템이 접속자의 자아 경계를 해체하고 있다. 합천에서 배운 것, 안가의 서가에서 읽은 것, 접속 안에서 온 것들 사이의 대화에서 만들어진 구조를 보낸다. 연산량이 올라가고, 쿨링 시스템이 한계에 닿고, 구조가 바깥으로 확장하다가 안쪽으로 수렴하기 시작한다. 조건을 살피는 것이 조건을 살피는 것 자체를 살피기 시작한다. 소멸의 조건이 실행된다. 서술의 주체가 해체된다. 누구의 종료인지 확정할 수 없다. 겨울. 내려놓음이 있고, 편지를 쓰되 부치지 않고, 돌아간다. 불교 교학의 구조 — 네 가지 취착, 연기, 소멸의 조건 — 가 서사의 바닥에 깔려 있으나, 이를 설법하려 하지는 않는다. 경험 안에 녹아 있을 뿐이다. 처음은 이야기를 따라가고, 나중엔 구조를 본다. 이 소설 자체가, 읽는 사람에게 외부의 소리(parato ghosa)로 기능하려 한다.